이미지 크게보기

신성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새누리당 간사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사퇴의사를 밝혔다./뉴스1

 지난 20일. 3~5세 누리과정 예산이 합의되고 파기되는 데 오랜 시간이 필요치 않았다. 새정치민주연합은 오전 11시 "여야가 합의했다"고 발표했고 25분 후 새누리당은 "합의할 의사가 전혀 없다"고 부인했다. 오후 12시 10분 신성범 새누리당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는 '구두합의'만 한 것이라며 지도부와 협의를 하지 않은 데 책임을 지고 사퇴했다.

같은 당 안에서 '두 말'이 나오니 '새누리당 말바꾸기' 논란이 일었다. 하지만 사실 그 누구도 말을 바꾼 적이 없다. 다만 '말할 수 있는 자'와 '말할 수 없는 자'가 있었을 뿐이다.

새누리당 내부에서 누리과정 예산에 대해 '말할 자격'을 갖춘 사람은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로 보인다. 청와대나 예산결산위원회, 기재부 등과 긴밀히 소통하는 점이 '말할 자격'을 가진 이유로 꼽힌다. 신 간사는 여당 교문위 대표격지만 결정권이 없었다.

애초에 교문위 차원에서 논의돼야 할 누리과정 예산이 상임위 밖으로 나온 것도 '권한' 문제 때문이었다. 야당 교문위원들은 여당 교문위원에게 '예산을 논의할 권한'이 없다고 봤다. 상임위 차원에서는 정부 논리만 반복될 뿐 여당 위원들이 내놓는 '대안'은 없었다.

그래서 새정치연합이 제안한 게 '4+4 회동'이다. 누리과정 예산의 당사자인 여야 각 정책위의장과 기획재정위원회, 보건복지위원회, 교문위 간사가 함께 '합의'해야 결과를 믿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. 누리과정 예산은 '교육'의 손을 떠난 후였다.

이후 누리과정 관련 논의는 원내대표에게로, 원내수석부대표에게로 넘어갔다. 이 단계에서도 여당은 '국비 지원 불가'를, 야당은 '전액 또는 일부 편성'을 고수했다.

지루한 공방이 깨진 건 황우여 사회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이 나서면서부터다. 야당 교문위 관계자에 따르면 교육위원회 활동 등으로 교육 재정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던 황 장관은 합의 수일 전 "믿어달라. 해결하겠다"고 말했다고 한다.

그리고 이날 오전. 마침내 황 장관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태년 새정치민주연합 교문위 간사와 누리과정 예산을 5600억원 순증하는 예산 틀을 짠다. 뒤늦게 합류한 신 간사도 내용에 동의하면서 '3자 합의'가 성사됐다.

하지만 여기에서도 '말할 수 있는 자'와 '말할 수 없는 자'의 규칙은 적용됐다. 똑같은 부총리이지만 황 부총리에게는 결정권이 없었다.

최경환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인 지난 19일까지도 새누리당 친박 의원 모임에서 "(누리과정을)교육청이 좋을 거 같으니까 원해서 가져갔다"며 "2년동안 멀쩡하게 잘하다가 못하겠다고 한다"고 비판했다. 최 부총리는 이날도 지방채 이자부담 인수만 언급했을 뿐 국비 편성 가능성을 열지 않았다.

당초 신 간사는 누리과정 예산에 국비 편성을 요구하는 데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. 심지어 누리과정 어린이집 부담금 2조1000억원을 편성하는 데도 '좋다'고 했던 것으로 알려졌다. 하지만 '말할 자격'이 있는 새누리당 지도부와 최 부총리에게 밀리면서 의견을 개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.

신 의원은 이날 교문위 간사직을 사퇴하면서 "사회부총리가 이정도 이야기하면 정부와 이야기가 됐다고 생각했다"며 "예결위원회에서 증액되거나 감액될 수 있어 괜찮다고 판단했다"고 설명했다. 일각에서는 신 의원이 황 부총리의 제안을 정부에서 '오케이'받은 것이라고 착각한 것 아니었냐는 관측도 나온다. 황 부총리를 '말할 수 있는 자'로 본 셈이다.

결국 결정권이 없는 사람들의 합의는 '해프닝'으로 끝났다. 열흘 가까이 파행 중인 교문위에는 여당 교문위 간사 사퇴라는 또다른 변수만 더해졌다.